[생각] 선거에서 패한 뒤 의사 수를 늘리려는 정부

정부가 강서구 보궐선거에서 참패한 뒤 여러 목소리를 내고 있고, 그 중 의대 정원을 늘리려 하고있다.
의사의 수는 의대생 입학의 수로 조절되기 때문에, 의대생 정원을 늘리면 6년 뒤 매년 나오는 의사의 수가 늘어나고, 이들이 전공의 수련을 받을 경우 10년 뒤엔 전문의의 수가 늘어나게된다.
현재 매년 나오는 의사의 수는 약 3000명 정도이기 때문에 1천명이 증원될 경우 의사의 수는 기존의 4/3 수준으로 더 증가하게 된다.
의사를 증원하는 논리는 간단하다. 현재 필수의료(사망, 치명적인 부작용 등을 방지하는, 소위 바이탈 과목에서의 의료)공백이 발생하는 일이 많기 때문에, 이를 의사 수를 증가시켜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제대로된 해결책이 되지 못하며, 사회에 큰 부담을 야기할 수 있는 부작용도 가진 대책이다.
1. 우리나라의 필수의료 공백은 바이탈과 전문의가 부족하기 때문에 벌어진 현상이다. 왜 부족할까? 단순히 생각하면 해당 과로의 전공의(레지던트) 지원을 안하기 때문이다. 2년전 쯤 서울대병원에서 처음으로 소아과 레지던트가 미달난 경우가 있었고, 대부분의 대학병원에서는 흉부외과와 소아과 레지던트 to가 채워지지 않는다. 그 원인은 이들이 수련 후 일할 직장이 부족하다는데 있다. 흉부외과 같은 경우 의원급에서보다는 상급종합병원, 못해도 2-3차 병원에서 할수있는 의료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들 병원에서는 흉부외과를 포함한 바이탈 의사들을 최소한으로(해당 급의 병원을 유지하기위한 최소 기준이 있다) 채용한다. 그 이유는 바이탈과 의사들이 일을 많이 할수록 적자가 나는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수가(의료행위에 대한 가격)가 정해져있는 의료체계상 동일 질병 또는 동일 행위는 같은 가격이 매겨진다. 더욱 큰 규모의 병원에서 얼마나 더 많은 인력과 더 많은 장비가 사용되는지는 일일이 고려되지 않는다. 더욱 매년 수가 인상률은 물가에 비해 매우 낮은 편이다(인상률이 크면 건보료를 많이 내야 되니 함부로 올릴수가 없다). 의료행위를 많이 할수록 적자가 나는 상황에서 의료법인은 바이탈 의사들을 많이 채용할수가 없다. 그러다보니, 신규 전문의가 양성되기는 커녕 이미 있는 전문의들도 전공과목 대신 미용 등 전공과 다른 진료를 하고있는것이 현실이다.

2. 그래도 의사 수가 늘어나면 산부인과나 소아과, 내과, 신경외과 등 지방에 부족한 전문의들이 더 배출되어 지방의 의료공백을 해소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는데, 이는 반 정도는 맞고, 반은 틀린 생각이다. 우선 의사 중 전문의가 차지하는 비율은 72.3%로, 이들 중에서 ‘마이너’라고 불리는 비 바이탈과목과 ‘메이저’로 분류되는 바이탈 과목으로 나뉜다. 약 30% 가량의 의사는 전문의 수련을 받지 않고 일반의로서 일하게 된다. 이들은 피부미용이나 내과, 가정의학과 등 종합적인 진료과목으로 일하게 되는데, 인기과를 전공하지 않고 바이탈을 전공하게 되느니, 일반의로 일하는것이 경제적으로 낫기 때문이다. 즉, 의사 수가 증가하게 되면 우선적으로 마이너과목의 의사 수가 증가한 뒤, 현재도 to가 채워지지 않는 필수과목보다는 to제한이 없는 일반의의 숫자가 많아질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의대증원 후 7년 뒤 전공의 to를 늘린다 하더라도, 필수의료인력이 많아질 가능성은 높지않다.

결국, 경제적인 논리에 따라 일반의의 공급이 많아져 가격이 하락하고(피부,미용은 비보험 진료이기 때문에 수가가 없다. 병원에서 가격을 정한다) 이들의 수입과 근무환경 등이 바이탈 의사만큼 내려가게되면 바이탈 의사가 증가하는것을 기대하는것이다. 그럼 기대하는 효과를 볼 수 있으니 괜찮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
3. 의사가 증가하면 그만큼 의료비도 증가하고, 그 의료비는 국민전체가 감당한다. 사실 이 부분이 제일 문제이다. 의료서비스는 필수재이면서 공공재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 수요가 공급에 맞춰지게 된다. 즉, 제공되는 만큼 소비하게되고, 공급이 증가하면 수요가 그대로 증가하게된다. (밝혀진 의료사회학적 현상이다) 그러면? 의료비 총 지출이 증가하고 이는 건보재정의 악화로 이어져 국민 개개인이 부담할 건보료가 증가할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안정된 의료체계를 갖춘 대부분의 국가에서 의료 수요를 억제하기 위한 의료정책을 가진다. 영국의 인두제(의료기관에 등록한 사람 1인당 의료비를 나라에서 지불. 해당 기관은 등록한 사람에게 일정 범위 내의 의료를 제공한다), 독일의 총액계약제(일정 기간 동안 의료기관에 정해진 금액을 지불. 일단 지불된 이후 의료 공급자가 의료서비스를 더 많이/적게 수행하는지는 상관이 없다)가 그것이다. 의료비는 곧 사회적 비용에 부담을 미치고, 이것의 재앙적인 증가는 안정적인 사회를 무너트릴 수 있다. 따라서 의료비가 증가하는 정책을 펼 때는 신중해야한다. 의사 수 증원 처럼 그 효과가 10년뒤에나 나타날 정책은 더더욱 그렇다.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우리나라가 미래에 의료서비스를 받아야 할 사람은 증가하고(사람은 죽기 전 5년 간 전체 인생에서의 의료비 중 90%를 지출한다고 한다), 건보료를 낼 사람은 줄어드는 상황에서 건보 재정에 위험을 증가시키는 정책일 수 있다.
4.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까? 해답은 간단하지가 않다. 무턱대고 바이탈과의 수가를 올려주자니, 적정수가를 결정하기가 어렵다. 고갈되어가는 건보재정상 어렵기도 하다. 바이탈 의사들의 처우를 개선해준다 한들, 당장 필요한 지방의 의료가 확충될지도 의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역별 수가제도, 공공의료, 의료비억제책 등 고려할수 있는 방안이 한둘이 아닌데, 이런 것들을 국민적인 눈높이로 이해시키기는 힘들다. 하지만 의대 정원 증가는 이해가 쉽다. 기득권인 의사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들을 때려잡는, 국민을 위하는 정부처럼 보일수 있겠다. 의사 수를 늘리면 표심을 얻을 수 있는걸까? 의사라는 전문직 집단의 이미지가 좋지 않은 탓에, 의사 증원 반대는 그들의 밥그릇 챙기기로 보일수도 있을것이다. 그러나 의료비는 국민 전체가 부담하는것이고, 정책이 야기할 의료비 증가 또한 국민 전체의 지출 증가로 이어지니 이익집단의 이권 싸움이라기보단 우리사회에 대한 장기적인 안목으로 정책을 평가해야 할 것 같다.